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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과학의 철학자들(스티븐 툴민)

by 뽀미랑 공감나무 2020. 5. 29.

스티븐 툴민


스티븐 에델스턴 툴민(Stephen Edelston Toulmin, 1922년 3월 25일 – 2009년 12월 4일)은 영국의 철학자이자 작가, 교육자였다. 툴민은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아, 도덕적 추론을 분석하는데에 관심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툴민은 효과적인 실용적 논법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이는 후에 수사학에서 수사학적 논증을 분석하는데 쓰이고 있다. 툴민의 논증 모델은 여섯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수사학과 커뮤니케이션학, 그리고 컴퓨터과학 분야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

생애


출생과 케임브리지 시절[편집]

스티븐 툴민은 1922년 3월 22일 영국 런던에서 제오프리 에델슨 툴민과 도리스 홀만 툴민 사이에서 태어났다. 툴민은 1942년 케임브리지 킹스 컬리지에서 문학 학사를 받았다. 이후 툴민은 항공기 생산부에서 하급 과학 장교가 되었는데, 처음엔 말번 레이저 연구소와 개발 연구소에서, 나중엔 독일의 연합 원정군의 최고 사령부에서 일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7년에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문학 석사학위와 철학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영국으로 돌아갔다. 케임브리지에 있는 동안 툴민은 오스트리아 철학자인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과 연락을 주고 받았는데, 비트겐슈타인이 연구했던 ≪언어의 의미와 사용의 관계≫는 툴민의 업적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었다.

케임브리지 대학 졸업 이후[편집]

툴민은 케임브리지를 졸업하고 난 후 1949년부터 1954년까지 옥스퍼드 대학교의 과학철학 강사로 임명되었다. 툴민은 옥스퍼드 대학에서 강사를 하는 동안 그의 첫 과학철학 책인≪과학철학: 입문(1953)≫을 썼다. 이후 1954년부터 1955년까지는 호주의 멜번 대학교의 과학 철학 및 과학사 방문 교수로 임명되었고, 1955년부터 1959년까지는 영국으로 돌아와서 리즈 대학교 철학 학부에서 교수 및 학부장으로 지냈다. 툴민은 리즈 대학교에 이는 동안 전통적 논리의 오류를 연구하여 ≪논증의 사용(1958)≫을 서술하였는데, ≪논증의 사용법≫은 당시 영국에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툴민이 1959년 방문교수로 있었던 미국의 뉴욕, 스탠포드, 콜럼비아 대학의 수사학자들로부터는 찬사를 받았고, 현재는 수사학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미국에 있는 동안, 웨인 브로크리드와 더글라스 에닝거가 툴민의 연구를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에게 소개했고,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은 툴민의 연구가 수사학적 논법의 분석과 비평에 유용한 좋은 구조상의 모델을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1960년에 툴민은 뉴필드 재단의 아이디어의 역사단체의 이사직을 하기위해 영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툴민은 준 굿필드와 결혼했고, 굿필드와 함께 과학사에 관련된 책을 저술했다.

후기, 미국에서의 툴민[편집]

1965년에 툴민은 생전, 여러 대학에 직위를 가졌던 미국으로 돌아갔다. 1967년에 툴민은 친하게 지내던 노우드 러셀 한슨을 위해 유저 관리자로 일하며, 여러 권의 유저들을 출판하였다. 특히 산타크루즈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 있는 동안은 개념적 변화의 원인과 과정을 연구한 ≪인간의 이해: 개념의 집단적 사용 및 진화 (1972)≫를 출판했는데, 이 책에서 툴민은 개념적 변화의 과정을 진화의 과정이라 주장하기 위해 전례 없는 개념적 변화와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 모델을 비교 했는데, 이 때문에 많은 논쟁을 빚기도 했다.

1973년에는 시카고 대학교에서 사회사상 위원회의 교수로 있으면서 라살 대학교의 알란 쟈니크와 공동으로 ≪비트겐슈타인, 빈, 그 세기말의 풍경≫를 출판했다. ≪비트겐스타인, 빈, 그 세기말의 풍경≫에서 툴민은 인간추리의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논제를 펼쳤다. 툴민은 절대적 진실의 존재를 믿고 플라톤의 이상적인 정상 논리를 옹호하는 철학자들에 반대하며, 진실이 역사적, 문화적 문맥 에 따라 상대적 특성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저자들은 이것을 개념도식으로 명명했다)

툴민은 1975년부터 1979년까지 미국 의회가 설립한 생의학 및 행동과학 연구의 인체 실험대상자의 보호를 위한 국립 위원회에서 일했다. 그러면서 알버트 얀센과 함께 도덕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절차를 다룬 ≪궤변의 잘못 된 사용: 도덕적 추론의 역사 (1988)≫를 썼다. 그의 최근 업적 중의 하나인 ≪코스모폴리스: 근대의 숨겨진 이야기 (1990)≫는 툴민이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아발론 재단의 인문학 교수로 있을 때 쓴 것인데 이것은 특히 현대 과학의 기초가 되는 실용성과 얕은 도덕성을 비판했다.

툴민은 콜롬비아, 다트머스, 미시간, 노스웨스턴, 스탠포드, 시카고대학을 포함한 수많은 대학에서 교수직을 받았다. 또, 1997년에는 미국 국립 인문학 재단에서 선정하는 제퍼슨 강의에 선정되었는데, 제퍼슨 강의는 미국 연방 정부가 인문학 업적에 주는 최고의 명예였다. 툴민의 강의는 ≪반대자의 이야기≫라고 불리었는데(≪반대자의 일생≫으로도 불린다), 합리주의와 인문주의가 가지는 현대성의 뿌리와 정당함과 합리적임이 어떻게 다른지를 이야기 했다. 또 독단주의극단적 배타주의종파주의 등 극단적인 관념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추상적 개념의 문제점을 경고했다. 미국 국립 인문학 재단 보고서에서 툴민에 내린 평가를 보면, "현대적인 생각에서 기술적, 인문학적 생각의 가닥들이 전보다 더 효과적으로 통합되게 만들었다" 고 한다. 2009년 12월 4일 LA에서 툴민은 심부전증으로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

메타철학[편집]

메타철학은 철학에 대한 생각과 비판을 담은 철학으로, 철학에 대한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툴민은 메타철학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대표적인 것 몇가지는 아래와 같다.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부정[편집]

툴민은 절대주의에는 실용적 가치가 결여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절대주의는 플라톤의 형식 논리학에 기반한 것이다. 플라톤의 형식 논리학은 전 우주에 걸쳐 적용되는 법칙의 존재를 믿는데, 이처럼 절대주의도 도덕적 문제가 주위의 상황과 관계없이 정해진 보편적인 도덕 원리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2]. 그렇기 때문에 이론적이고 분석위주의 논증에 치우쳐져 있는데, 툴민은 보편적인 도덕 원리가 사람들이 실제 생활과 크게 관련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툴민은 그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논쟁의장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그는 저서 ≪논증의 사용(1958)≫에서 논쟁의 일면은 그 배경에 따라 달라지며 이러한 일면을 논쟁의 장에 의존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다른 논쟁의 일면은 배경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데, 이러한 일면을 논쟁의 장에 비의존적이라고 했다. 즉, 논쟁의 일면이 다루어지는 범위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우리는 논쟁에 있어서 그 논쟁거리의 어떤 면이 배경에 영향을 받고 어떤 면이 배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절대주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논쟁거리의 모든 국면이 논쟁의 장에 비의존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절대주의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또 다른 저서 ≪인간의 이해: 개념의 집단적 사용 및 진화(1972)≫에서 툴민은 인류학자와 상대주의자가 같은 편이라고 주장했다. 둘 다 문화적 차이의 영향을 크게 고려하는 특징이 있는데, 논쟁에서 논쟁의 장에 의존적인 요소의 비중을 크게 두고, 논쟁의 장에 비의존적인 요소들을 간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즉, 절대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는 상대주의도 성립하지 않는다. 툴민은 상대주의자와 절대주의자는 논쟁에 있어서 모든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각각 논쟁의 장에 의존적이거나, 비의존적인 요소만 중시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현대성을 인간화[편집]

≪코스모폴리스≫에서 툴민은 일반성과 보편성을 강조하는 근대 철학의 기원을 찾고, 실질적으로 중요한 실용적 문제를 무시하고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문제만을 다룬 근대철학과 근대과학을 비판한다. 툴민은 절대론과 이론적 논증의 추구하는 것은 실용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는데 실질적인 문제에 크게 관련이 없기 대문이다. 또, 툴민은 생태학에 관련된 실용적 문제에서 원자폭탄 개발을 개발한 근대과학에 도덕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잘못된 현대성이 인간적으로 복귀하려면 네 가지 복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우선, 학문의 초점이 철학자들의 말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으로의 복귀, 둘째, 실용적이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도덕적 문제를 다루는 개인적이고 상대적인 사건으로의 복귀, 셋째, 지방 또는 명확한 문화적, 역사적 환경으로의 복귀, 넷째, 시간이나 시대에 관련 없는 문제를 다루는 것에서 합리적인 의미가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을 다루는 복귀이다. 이 비판은 ≪이성으로의 복귀(2001)≫에서도 이어지는데, 이 책에서 툴민은 사회의 보편성은 토론과 주요 도덕적 이론, 실제 삶에서 도덕적 위기가 다른 것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한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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