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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코로나19: 총각엄마와 10명의 아이들의 좌충우돌 온라인 개학 일기

by 뽀미랑 공감나무 2020. 5. 29.

2020년 봄, 전세계적으로 발생한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한국은 사상 첫 '온라인 개학'을 맞게 됐다. 코로나19로 인해 10명의 아이들이 한번에 온라인 수업을 듣는 건 어떤 모습일까?


북한에서 온 10명의 아이들과 함께 한 집에서 살고 있는 '총각엄마' 김태훈 씨의 바쁜 하루를 들여다봤다.


첫 온라인 개학, 10명의 아이들 한번에 수업 듣기


"여기서 선생님 기다려야지, 이걸로 유튜브 보고 있으면 어떡해!"

2020년 4월, 첫 온라인 개학이 있던 날, 총각엄마 태훈 씨의 집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큰 아이부터 막내까지 방마다 돌아다니며 곤히 잠든 아이들을 깨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삼촌'의 재촉에 아이들은 2층에 있는 큰 탁자에 각자 노트북과 태블릿 PC를 갖고 모여 앉았다. 10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한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 해서 부족한 스마트 기기는 교육청에서 대여를 받았다.

"개학 전까지 얼마 간의 시간을 두고 예행 연습을 했어요. 처음에는 우왕좌왕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이들도 나름 잘 적응했어요. 1교시, 2교시 이렇게 시간 맞춰서 강의 영상이 올라오고 점심 시간이 되면 수업이 딱 멈춰요. 저는 그럼 또 음식 차려놓고 애들 불러서 다같이 점심 먹고 각자 다음 수업 들어가죠."

분주했을 개학일이 지나고 화상 인터뷰로 만난 태훈 씨는 10명의 아이들과 함께 한 온라인 수업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이른 아침, 아이들 기상에서부터 학교 과제 하나까지 손수 챙기는 그를 아이들은 '삼촌'이라고 부른다. 이들에게는 과연 어떤 사연이 있을까?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서울의 한 2층짜리 주택에는 '총각엄마'라는 별명을 가진 태훈 씨와 10명의 남자 아이들이 함께 살고 있다. 아이들이 '삼촌'이라고 부르는 태훈 씨 외에는 모두 북한이 고향인 아이들이다. 그가 이른바 '북한이탈청소년'들과 함께 한집에서 가족으로 살아온 지도 어느덧 15년째를 맞았다.

초등학생인 막내 준성이부터 중학생인 주영이, 금성이, 청룡이, 호빈이, 고등학생인 철광이, 권이, 광일이, 명도, 그리고 가장 큰형인 대학생 군성이가 모두 한 가족이다. 그리고 이들 개성 넘치는 아이들을 뒷바라지 하며 보살펴주고 있는 사람이 바로 올해 45살의 김태훈 씨다.

"각자 사연은 다 다르지만 저희 아이들 대부분은 한국에 부모님이 안 계세요. 북한에 있는 부모들이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아이만이라도 잘 살 수 있도록 브로커를 통해 자식만 한국으로 보내는 거죠. 아주 어린 경우엔 브로커 등에 업혀서 탈북을 하게 되는 아이들도 있어요."

태훈 씨네 가족은 '그룹홈'이라는 일종의 공동생활가정이다. 탈북청소년들이 함께 모여 살기 때문에 탈북청소년 그룹홈으로 불리기도 한다. 탈북을 하게 되면 통일부 산하의 하나원에서 3개월 간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교육을 받게 되는데, 이후 미성년자인 아이들은 혼자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기숙학교나 보호시설 등으로 가거나 이같은 그룹홈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그룹홈은 아이들을 보호하는 시설 중에서 가장 최소 단위예요. 지역사회에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정착하며 살 수 있도록 가정의 형태로 운영되는 보육시설인 셈이죠. 하지만 우리집 아이들은 이 집을 보육시설로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내 집이라고 생각해요."

태훈 씨의 설명에 따르면, 그룹홈은 기본적으로 만 18세까지 살 수 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에 들어가게 되면 졸업 때까지 연장할 수 있다. 취업을 하면 1년 안에 자립해야 한다.

"저희 집 가장 큰 아이는 대학에 진학해 저와 함께 살고 있고요. 처음 같이 살았던 아이는 지금은 20대 성인이어서 이미 독립해 살고 있어요."

아동보호법에 따라 하나의 그룹홈에는 최대 7명까지 함께 살 수 있다. 때문에 가족이 많은 태훈 씨네 집은 1층과 2층, 두 개의 그룹홈을 꾸려 지내고 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10명의 아이들은 이곳을 보육시설이 아닌 진짜 '집'으로 생각하고 살고 있다.

'빨래부터 장보기까지'...총각엄마의 바쁜 일과


태훈 씨의 하루는 새벽 6시에 일어나 아이들을 깨우는 일부터 시작된다. 학교 가야 하는 아이들을 깨워 아침 밥을 챙겨 먹이고 등교 준비를 시키다 보면 아침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대가족의 살림을 꾸려 나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집안일은 태훈 씨가 직접 다 해오고 있다.

"집안일 중에 제일 힘든 건 장보는 일이에요. 어마어마한 양을 매일 봐야 하거든요. 한창 자랄 나이의 남자 아이들이다 보니까 먹는 양도 보통이 아니거든요. 저는 분명 카트에 어마어마한 양을 실어서 장을 봐왔는데 그게 하루 만에 다 없어지면 허탈하기까지 해요. (웃음)"

식구가 많다보니 한 달 생활비도 만만찮다. 매일 같이 장을 봐야 하니 식비만 해도 한달 평균 250만원에서 300만원에 달한다. 그룹홈 초반에만 해도 기본적인 생활비는 디자인을 전공한 그가 미술 강사를 하며 벌어들인 돈으로 해결했다. 하지만 식구가 늘어나고 돌봐야 하는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아졌다.

때문에 이후에는 일부 정부 보조금에 기업 사회공헌 제도의 도움을 받아 살림을 꾸려왔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이 여전히 편하지 않다는 그는 최근 강원도 철원에 작은 카페를 열어 조금이나마 경제적 자립을 해보기로 했다.

"이 일을 15년째 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누군가에게 계속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게 참 쉬운 일은 아니에요. 도와달라고 하는 말조차도 너무 어려워요. 그래서 내 스스로도 좀 벌어서 우리 아이들을 잘 키워야겠다는 마음으로 가게를 열게 됐어요."

오전 일찍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가게에 나가 장사 준비를 하고 다시 저녁에 와서 아이들을 돌보다 또 가게를 마감하러 간다. 가게 일로 잠시 집을 비워야 할 때면 사회복지사 선생님이나 어머니가 직접 집에 와서 일을 도와주기도 한다.

특히, 태훈 씨의 어머니는 거의 매일 같이 집에 와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리도 해주며 살림에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부모님이 처음부터 그를 응원했던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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